《Unbinding Bodies》 swiftly captures the fissures in the process where the human body, technology, consciousness, life, perception, and existence are mutually excessive and deficient. This fissure is understood as a transition from a closed to an open world, surpassing the self-contained characteristics of Western metaphysics.  

《몸의 결속 해제》는 인간, 신체, 기술, 의식, 생명, 감각, 존재가 상호적으로 과잉되고 결핍되는 과정의 틈을 민첩하게 포착한다.

이 틈은 서구 형이상학의 자기 완결적 특성을 넘어, 즉 닫힌 세계에서 열린 세계로 전이되며 파악된다.

Artworks

  • Shirshasana(머리서기)

    2024

    780x830x1500

    Pipe, aluminum, motor, rubber, hose, spring, stainless tube, webcam, MCU, 3D printed sculpture, wire, fur, face tracking system

  • Setu Bandha Sarvangasana(다리자세)

    2024

    1690x800x1000

    Pipe, aluminum, motor, rubber, hose, spring, stainless tube, webcam, MCU, 3D printed sculpture, wire, fur, face tracking system

  • Utkatasana(의자자세)

    2024

    1080x1090x1800

    Pipe, aluminum, motor, rubber, hose, spring, stainless tube, webcam, MCU, 3D printed sculpture, wire, fur, face tracking system

  • Extruded Body (돌출신체)

    2024

    2000x1864x1700

    Experiential art

    Aluminum, joy sticks, wire, computer, monitor, webcam, computer vision program

  • 2024

    Performance

Opening Live Performacne <>

2024/10/26 17:00

Workshop

2024/11/10

Artist Talk

2024/11/10

  • 나에게 균형은 고요가 아니라 극도로 동적인 상태이다.

    세계가 컵의 끝자락에 정확하게 물이 차 있는 것과 같다면 그 고요함은 죽은 것이다.

     

    세계는 끊임없는 과잉이자 결핍이다.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것”이 접촉하고

    끓어오름과 잠재우는 것이 공존하며

    한 쪽이 차오르면 추는 다시 기울어진다.

     

    복잡하고 다양한 것들이 생생히 움직이는 상태.

    나의 감격은 세계가 얼마나 다분히 살아있는 지 감각할 때 온다.

     

    그것은 춤을 추는 것과 같다.

    무아지경의 움직임은 몸과 마음의 씨름이고

    촘촘하게 변화하는 기체는 이를 끌어안는다.

     

     

    잠시 눈을 감고 내 발이 딛고 있는 땅의 경도를 느껴보거나,

    코 끝에, 혹은 저 멀리 어떤 냄새가 흘러가는지 느껴보면

    그 어떠한 것도 이유가 없는 것이 없다.

    복잡해 보이는 다수는 사실 빽빽하게 연결되어 서로에게 밀접한 영향이 된다.

    새롭게 생성되는 것과 소멸되는 것들 중에 닮지 않은 것이 없다.


    내 안의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은 과잉 된 노력으로 발산됐다.

    나는 나의 모자람을 경멸했고 그로 생성되는 과함에 고통받았다.

    그 끊임없는 역동 속에서 모든 것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완벽한 그 순간을 꿈꿨다.

     

    그러나 세계는 완결하지 않기에 아름다우며 그 반대는 죽음이란 것을 알아가면서,

    휘몰아치는 갈등과 괴로움은 지금껏 인류를 끌어왔던 에너지이자 균형을 위한 역동의 일부라는 것을 인지했다.

     

     

    어떤 진리가 옳고 무엇이 실재인지는 인생을 걸고 찾아가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그것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얻게 된 것은

    열림,

    그 무엇보다 모든 것을 평등하고 공평하게 흡수하고자 했던 순수한 마음,

    모자람과 과함 사이의 움직임을 세계의 원리로 받아들이기 위한 훈련이었다.

     

    새롭게 뿜어져 나오는 기술들이 낯설지만 그들은 무엇보다 빠르게 흡수된다.

    그것은 그들이 인간의 의식과 신체를 대리하고, 그 과잉과 결핍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잠시 평평한 눈으로 바라보면 그 안에 스스로를 발견한다.

     

    로봇암은 인간의 팔을 모방하여 만들어졌지만, 인간이 하지 못하는 과잉된 업무를 수행한다.

    가령 무거운 물체를 들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해야 할 때.

    혹은 유연한 움직임의 스네이크 암은 의료 환경에서 신체 안팎을 횡단한다.

     

    컴퓨터 비전 기술은 인간의 시각 시스템을 모방한다.

    우리는 확장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이미 많은 부분을 카메라와 센서에 감지 시스템을 의존한다.

     

    계속해서 과잉된 욕심을 부린다.

    인공지능이 우리의 표정에서 감정과 정신을 읽을 수 있길 바란다.

     과잉 속에는 근원인 결핍이 비친다.

    생이 몸과 마음의 겨루기인 것처럼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내는 기술들은 인간의 과잉과 결핍 사이에서 출렁거린다.

    사실 모든 객체는 끊임없이 연결되어 꿈틀거리고 서로가 서로를 담으려 한다.

     

    그 촘촘한 연결을 인지할 때

    의식은 몸의 경계를 넘어가는데

    나는 그 순간에 집중한다.

     

    의식이 확장하면 감각의 구멍들이 벌어지고

    고성능 센서들로 이루어진 몸은 보충원을 찾기 위해 팽창한다.

    ‘실재’일까?라는 질문보다 먼저 실재로 다가오던 세계가

    다르게 느껴지고

    궁금해진다.

     

    뻗어 나간다.

     

    돌출한다.